시간 관계 상(정확히 말하자면 절차 상- 오늘 모임이 끝나고 모두 술 한잔 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통집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열띤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술은 먹는 둥 마는 둥, 생명의 정의에 관해, 생명을 정의하는 일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인가에 관해, 물리학을 공부하고 세상을 설명해 줄 간단한 법칙을 찾는 것의 의미에 관해, 어떤 대상의 탐구에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관해, 인간의 사고에 언어가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관해, 인간의 호기심에 관해,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도와 깨달음에 관해, 대체 과학에 관해, 그리고 그 외에 기억나지 않는 주제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적어 두는 이유는 첫째로 내일이 되면 잊혀질지 몰라 두려워서이고, 둘째로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한 이야기들을 갈무리해 뒀다가 머릿속에서 다시 굴리기 위해서이며, 셋째로 참으로 재미있게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쓸데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알게/배우게 되어서 즐겁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굳이 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인데, 물리와는 관계 없어 보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물리학적 개념과 방법론에 대응시키다 보면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측면들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많이 쌓일 수록, 새로이 발견하는 것이 많을 수록 통찰력이 자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자리에 있던 H양이 말했다. 물리학의 경계가 불분명한게 아니냐고. 하지만 물리란 결국 '사물의 이치'가 아닌가? 물리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란 이름을 지은 사람은 미래의 학제간 연구까지 예견하는 굉장한 식견이 있었던게 아닐까.)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서구적인 '과학적 방법론'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틀 안에서도 아직 배울 것은 많다.
덧. 왜 물리학을 공부하는가에 대해서는 결국 '재미있고 궁금하니까'로 의견이 수렴되었다.
footnote
- SBD-NCRC의 지원을 받아, 포항공과대학교 i-Bio 학생들과 물리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학제간 공동 연구를 활성화 하기 위해 만든 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