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 3학년 꼬마에게 영어 과외를 하고 있다. 정규교과과정에 따르면 이제 막 abc를 배워야 했을 이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독해 문제집을 가져다 줘도 곧잘 풀어낸다. 영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하고 있는 과외 말고도 영어 학원만 두 군데 더 다니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지-공부를 시킴당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도 기특한건, 이 아이가 별 불평 없이 열심히 여기저기 다니고 공부하고 숙제하고 시험본다는 거다. 뭔가 배우는 것 자체는 싫어하지 않는 듯하다.
이 아이의 세 살 터울 오빠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했다. 오늘 과외를 갔더니, '한국은 경쟁이 너무 심해서' 이 아이도 영국에 있는 학교로 전학가기 위해 다음 주에 테스트를 받으러 간다고 한다. "그러면 오빠랑 같이 사는거야?" 그랬더니 "엄마도 같이 갈 거 같아요. 우리 아빠 기러기 아빠 될지도 몰라요." 한다. 의외로 덤덤하다. 월요일에 영어 학원 가야 하는데, 아직 숙제를 안 해 놔서, 내일(월요일에) 당장 영국으로 테스트 받으러 갔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내일 영국에 갔다 온다고 해도, 이 아이는 아직 하지 않은 숙제와 내일 분의 또 다른 숙제를 모레 하게 되겠지만.
"학원 같은 거 안 가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지 않아?" 물었더니 "아니요~" 도리도리한다. "걔들 만나도 할 거 없어요." 친구들을 만나서 뭘 하고 놀아야 할지를 배우지 못한 세대다. "시간 나면 티비보면서 놀아요. 그게 편해요."
영어 학원에서 내 준 글짓기 숙제를 도와줬다. 자기 자신에 대한 fantasy를 써 보라는 것이다. 이 아이는, 컴퓨터를 삼켜서 컴퓨터처럼(사실은 아마도 검색 엔진처럼) 무슨 질문에도 척척 대답해 낼 수 있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그 소녀는 자라서 의사가 되었고,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10살 먹은 아이가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월요일에는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서 밤 9시까지 학교와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는 10살 먹은 여자애다. 겉보기에는 재잘재잘 잘 떠들고 깡총거리며 잘 뛰어다니고 우스운 얘기를 해 주면 깔깔대는 꼬마다.
다음 주에 만났을 때에는 장래희망이 뭔지, 의사가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고 싶다.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은지도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내가 말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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롹스삐릿을 심어준다든가 ..
으음......
롹스삐릿 콜..
10살때 AC/DC와 GNR를 들으면 이렇게 된다고 내 사진을 보여주는 거다! 부작용만 크려나..
에ㄹ, 믹스 // 글쎄 -_-; 애를 오히려 망치게 될지도. 애들은 역시 자연스럽게-_- 크는게 좋은데 말이지.
롱고 // 애가 영국에 테스트 받으러 간다고 이번 주 과외 안 하게 되었음. 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