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
금요일에는 종일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발표 준비도 안 하고 놀기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자신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졸린 머리를 쉬지 못하게 벌을 주고 있습니다만 그러면 토요일도 없어질테니까 조금 있다가 방에 가서 자야겠습니다. 새벽에 연구실에 혼자 있으면 조용한 것이 좋아요. 혼자서 내려가는 길은 재미가 없지만. 왼족 아래 사랑니 근처가 잔뜩 부어 올랐습니다. 턱을 움직일 때 마다 아프지만 그래도 밥은 잘 먹지요. 피를 몇 번 더 흘리고 나면 붓기가 가라앉을테고, 그러면 또 아무 일 없는 듯이 치과에도 가지 않고 저는 살고 있겠지요. 낮에는 충동적으로 셔츠를 두 장 샀습니다. 택배가 도착하면 기분이 좀 좋아질까요? 이제 해가 뜨고 있습니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 가지 않아도 되니 다행입니다. 요즘엔 78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실족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천천히 다니고 있습니다.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면 번지점프를 해 보러 가야겠습니다. 언제나 생각만 하고 있지, 실제로 점프를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이 한참 어지럽고 답답하고 감정이 격앙되어 있을 떄에나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에는 가끔 아무 전조 없이 창문을 열고 밖으로 뒤어내리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바닥에 닿는 상상은 하지 않아요. 네네. 무책임한 인간입니다. 평소에 받는 스트레스의 양이 증가해서 그런걸까요. 상상은 상상일 뿐이니까 실제로 어디선가 (줄을 묶고서라도) 뛰어내려 보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주변에는 추락할 때의 기분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진 않네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숴 봅시다. 두서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 헛소리만 늘어놓더라도 그러면서 또 뭔가 배우게 되겠지요.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포장만 하고 있는 느낌일까요. 한 명 쯤은 궁금해하는 동생의 소식. 중앙대 병원에서 항암치료 중입니다. 진단받은지 2개월이 조금 넘었나요. 중간검사 결과는 희망적인듯 하니 이제는 저도 좀 덤덤하게 처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약을 많이 복용했으니까. 그래도 정작 치료를 받고 있는 이 녀석에게는 시간이 더디기만 한가 봅니다. 미안할 따름입니다. 한 쪽에서는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창 밖으로 다이브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웃기면서 괴롭지요. 동생도 동생이지만, 엄마가 동생을 간호하러 서울에 올라 가셨기 때문에 대구에 혼자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쓰럽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쓸쓸해요. 쓸쓸합니다. 이제 해가 완전히 떴습니다. 햇님이랑 친구해서 기숙사에 내려갑니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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