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그렇듯이 또 쫓기고 도망치는 꿈이었다.

2. 이번에는 총을 가진 군인들이 쫓아오길래 들판을 달리고 계속 달려서 바다 옆에 있는 조그만 도시로 숨어들었다. 내가 달려왔던 길은 논과 개천에 닿은 시골길이었는데, 이 작은 도시는 의외로 큰 지하철 역과 넓은 광장을 가지고 있었다.

3. 어릴 때의 도망치는 꿈 속에는 귀신 같은 것들이 나오는게 보통이었고, 나는 무섭다는 생각을 하면서 쫓겨다녔다. 이제는 경비원이나 군인같은 존재가 나를 뒤쫓고 나는 잡히지 않기 위해서 달리거나 숨는다. 하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도망치는 꿈을 너무 많이 꿔서 그런가, 그냥 당연한 듯이 달리고 숨는다. 경비원이나 군인으로 대변되는 '나를 쫓는 존재'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나를 쫓는 것은 아니다. 나를 잡거나 내쫓고 싶어하는 것은 사실은 꿈 속의 그 도시이고, 그 건물이고, 그 집단이며, 그 속에서 나는 홀로 이방인이다. 가끔 조력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는 혼자 달리고 있다.

4. 같은 장소라고 생각되는 곳이 꿈 속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때가 있다. 지난 12월 중순처럼 병적으로 많이 자던 시기에는 -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 꿈 속에서 본 세상이 정말 내가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오늘 본 바닷가의 도시도 인상이 강렬해서 대충 그림을 그려뒀다. 예전에 꿈에서 보았던 빌딩숲의 큰 도시와 이 작은 바닷가 도시는 길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달렸던 길을 거꾸로 거슬러 가면 개천은 큰 도시 옆을 흐르는 큰 강과 만나고, 그 위에 놓인 넓은 다리를 건너면 어두운 동굴같은 지하를 가진 쇼핑몰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큰 도시의 중심에는 온통 유리로 만들어진 115층 쯤 되는 높은 타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어디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지만. 그래서 앞으로는 꿈을 꾸면 지도를 만들듯이 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해 놓을 생각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꿈 속에서도 '아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