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하게도 이번 연말연시는 전혀 들뜨거나 기쁘거나 슬프지 않았다. 제일 큰 변화는 연구실 책상 옆에 놓고 쓰는 스케줄러 용도의 달력이 바뀌었다는 것 뿐. 새 달력에 마저도 해가 바뀌기 전부터 몇몇 스케줄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10월이 11월이 되는 것과 사뭇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 지인들에게 새해 안부 문자도 (잊어버려서) 보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늦게 자고 많이 자고 머리가 아프다.
2. 믹스군이 미국으로 가기 전에 2007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떠안겨줬는데, 그것이 한동안 교과서 외에는 책을 등한시 하던 나의 메마른 독서 생활에 다시 물을 대어 주었다. 책을 받고 방에 올라가서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다 읽었는데, 대학 입학 이후로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 읽고 나도 놀랐다. 메마른 인생이다! 거기에 실린 김애란 작가의 단편 '침이 고인다'가 마음에 들어서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달려라 아비'도 구입을 해버렸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소설책을 샀던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달려라 아비'에 실린 단편들 중에 어떤 것-보통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려워서 이해하기가 힘든 반면에 어떤 것은 마음 속에 너무도 잘 와 닿는데, 그것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나('영원한 화자'),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거나('종이 물고기'), 잘은 모르겠지만 소재가 마음에 들어서('나는 편의점에 간다', '노크하지 않는 집')인 듯하다. 내게는 확실히 감동을 체계화해서 설명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훈련이 부족하다. 그래도 좋았던 작품들은 천천히 생각해서 감상평을 써 봐야겠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종이 물고기'.
3. 대상에 대해 부분적인 정보만 가지고 조급하게 판단을 내리고는,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즐거워 하는 버릇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3-5. 기분이 꿀꿀하면 나는 잠을 많이 자서 머릿속에 있는 화학물질들을 씻어버리거나, 별 필요없는 것-대표적으로 샤프-들을 사는데 돈을 쓰면서 기분을 푼다. 왜 무언가를 사면 기분이 나아지는 걸까 생각을 해 봤는데, 소비를 해서 내가 새로이 가지게 되는 물건의 가치로 인해 내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느끼게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통장에 돈을 쌓아두는 것 역시 내 가치를 일부 높여 주기야 하겠지만, 그건 눈에 잘 안 보이니까.. 결론은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것. 혹은 샤프라서 다행이다?
4. 거의 한달 정도를 불면과 과다수면과 delayed sleep phase syndrome이 미묘하게 혼합된 것같은 형태의 수면장애(라고 해야 하나?)를 겪고 있다. 다행히도 나를 잠 못들게 하던 주요 원인은 얼마 전에 제거되었지만 늦게 자고 많이 자는 습관이 잘 없어지질 않고 있다. 덕분에 약간의 두통과 어지럼증까지 생겨서 좀 괴롭다. 오늘도! 회식 끝나고 연구실에 올라와서는 해야하는 공부는 안 하고 괜히 소설책 한 권 읽어버리고 이 시간까지 블로그질이나 하고 앉아 있고.. 그런데도 졸리지도 자고 싶지도 않다는 게 문제다. 이걸 어떡하지.
5. 일기를 쓰려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일기라고 해 놓고서는 공개를 하는 것도, 공개할 것을 의식하고 글을 쓰면서 은연 중에 자체 검열을 하는 것도, 블로그에는 일기보다 거창한 무엇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은 다 우스운 거지. 이 정보가 도움이 되셨습니까? 내 블로그에 내가 뭘 쓰든 상관이야 없지만 일기를 쓸거라면 트랙백이고 태그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미안하네 텍스트큐브 씨. 당신 기능을 100% 다 못 써줘서. 어쨌든 나는 웃긴 사람.
2008년 1월 3일 하얀 편집창을 보면서 떠오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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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책 잘 읽었다니 다행이네 ^^
적당히 괜찮은 책 있으면 시간날때 던져줘 ㅋㅋㅋ
하아
믹스! 잘 지내고 있냐? 뭉이랑 같이 수경이네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됐다면서? ㅎㅎ 뭉이 곧 연락할거야.
TC 기능 다쓰면 변태야-_-
거 신모씨도 다는 안쓸껄.....
아니다 신모씨라면 다 쓸지도?;;;;;;;
써놓고 나니......이거 먼가 좀 이상하구나...
미안해 ( -_-);;;
TC 기능 다 쓰는 사용자가 변태라면 -_- TC 만드는 사람들은? 0_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