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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하면서 가장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내 손으로 쥐를 죽여야 할 때이다. 아무렇지 않은듯 마취제를 과량투여하고 경추를 탈구시키고 머리를 자르고 두개골을 부수고 뇌를 꺼내기는 하지만, 실상 말초의 신경은 근육을 제대로 통제하질 못 해서 손에 잡고 있는 핀셋은 언제나 덜덜 떨린다. 아직 뇌를 꺼내는 작업에 완전히 익숙해지질 않아서인데, 익숙해 지면 오히려 이 작업이(무감각해지는 내 스스로가) 더 싫어질 것만 같다. 죽이는 것 보다는 살리는 것을 업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처음 실험 배울 때에는 호기심에 가려서 숨어있던 어떤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표면으로 떠오른다. 거대한 쥐 수용소의 소장 역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그만큼 무거운 대의명분이라도 있어야 하겠는데, 나는 꼭 쥐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게 이런 거였을까,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나는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걸 따라 왔을 뿐인데, 내 손에 죽은 + 곧 죽을 쥐가 50 마리가 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할만치 깨끗한 데이터가 적다는 것은 나를 탓해야 할지, 무엇을 탓해야 할지.


블로그 복구 기념 포스팅, 사실은 글쓰기가 안 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거다. 그런데 생각을 안 하고 살아도 생각이 곪아서 터질 수가 있겠구나 싶다.

지금의 상황은 좋음과 싫음이 잔뜩 뒤섞여서, 무엇을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없다.

2009/07/20 01:26 2009/07/20 01:26